"지원금 끊겠다" 압박…하버드대 등, 트럼프 기조에 잇단 '순응'
친팔레스타인 활동 중징계…"지원중단 위협해 침묵 강요" 반발
존스홉킨스대는 USAID 프로젝트 삭감에 연구자 2천여명 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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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대 대학원생 석방 요구 시위 (뉴욕 EPA=연합뉴스) 2025년 3월 11일 뉴욕에서 최근 체포된 컬럼비아대 대학원생 마무드 칼릴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EPA/SARAH YENESEL) 2025.3.14.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최근 미국 북동부 명문 사립 아이비리그 대학 등 최고의 대학들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요구해 온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폐기와 친팔레스타인 활동 징계를 잇달아 실행하고 나섰다.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대학들의 이런 방침 변경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에 순응하지 않는 대학들에게 연구비 등 지원금을 끊어버리겠다고 정부 측이 압박하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하버드대 교지 '하버드 크림슨'에 따르면 대학 당국은 지난 3일 열린 친팔레스타인 집회 도중 이스라엘인 인질들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떼내는 행동이 카메라에 포착된 대학 산하 래드클리프연구소 도서관 사서 조너선 터틀에 대해 면직 조치를 내렸다.
대학당국은 면직조치가 완료됐다는 사실을 일요일인 9일에 밝혔으나, 면직조치의 정확한 날짜는 공개하지 않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예일대 법학전문대학원은 미국 정부의 제제 대상인 친(親) 팔레스타인 조직과의 연계 의혹이 제기된 국제법 연구자 헬리예 두타기에게 휴직 처분을 내리고 캠퍼스 출입을 금지시켰다.
코넬대에서는 이번 주에 친팔레스타인 집회를 연 학생들이 정학을 당할 위기에 몰렸으며,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는 반(反)유대주의를 억제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초에 켄 그리핀 시타델 최고경영자(CEO), 렌 블라바트닉 액세스 인더스트리스 회장, 리언 쿠퍼먼 오메가 어드바이저스 창업자 등 일부 거액 기부자들이 대학들의 반유대주의 방치와 DEI 정책 등을 문제삼으며 기부를 중단한 적이 있으나, 그 당시보다 대학들이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하버드 유대인 졸업생 동문회의 언론홍보 담당자인 로니 브라운은 블룸버그에 "연방정부의 조치는 동문들의 압박보다 훨씬 더 무게감이 크다. 즉각적인 재정적 영향과 규제조치에 따른 결과, 양쪽 측면 다 그렇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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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인 대학원생 석방 요구하다가 끌려나가는 유대인단체 회원 (뉴욕 AP=연합뉴스) 2025년 3월 13일 뉴욕의 트럼프타워 내에서 팔레스타인인 컬럼비아대 대학원생 마흐무드 칼릴의 석방을 요구하며 항의시위를 벌이던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 단체 회원이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AP Photo/Yuki Iwamura) 2025.3.14.
지난해 반이스라엘 친팔레스타인 농성과 시위가 몇 달간 열렸던 컬럼비아대에 대해 트럼프 2기 백악관은 이 대학에 대한 4억 달러(5천800억 원)의 지원금을 끊으라고 정부 부처들에 지시했으며, 다른 대학들에게도 이런 조치를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지원중단 발표 후 카트리나 암스트롱 컬럼비아대 임시총장은 징계절차를 강화하고 반유대주의 억제에 더욱 노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는 "컬럼비아는 정부의 조치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연방정부의 정당한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연방정부와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컬럼비아대는 지난주에 이 대학 산하 학부과정 여학생 단과대학인 바나드대에서 열린 시위와 관련해 학생 4명에게 정학 조치를 내리고 캠퍼스 출입을 금지했다고 발표했다.
친(親)팔레스타인 시위를 주도했던 컬럼비아대 대학원생 마흐무드 칼릴(30)은 자신이 거주하던 캠퍼스 인근의 컬럼비아대 소유 아파트에서 지난 8일 밤 체포됐다.
정황으로 보아 체포 실행에 대학 당국의 협조가 있었을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컬럼비아대는 또 작년에 교내 해밀턴홀 점거농성에 연루된 학생들에게 다년간 정학, 일시적 학위 취소, 퇴학 등 징계를 내렸다고 13일 밝혔다.
하버드대에서 고전학을 가르치는 리처드 토머스 교수는 "이런 조치들은 실제 반유대주의와는 별로 관련이 없다"며 "지원금 중단의 공포를 통해 대학들을 침묵시키고, 은밀하고 초사법적인 검열의 공포를 이용해 학생들을 침묵시키려는 것"이라고 블룸버그에 밝혔다.
미국 정부가 해오던 해외 원조나 과학 연구 등 프로젝트가 마구잡이로 중단되면서 연구중심 명문대학들에서 정리해고도 잇따르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의학과 보건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존스홉킨스대는 미국 내에서 247개 일자리를, 다른 44개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1천975개 이상의 일자리를 각각 없애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대학 당국은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지원금 중 8억 달러(1조2천억 원) 넘는 금액이 사라지면서 핵심 업무도 줄여야만 해 이처럼 2천200여명을 정리해고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렸다고 밝혔다.
solat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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